〈미드소마〉는 아리 애스터 감독이 〈유전〉 이후 선보인 두 번째 장편 공포 영화로, 스웨덴 한 마을의 백야 축제를 배경으로 심리적 불안과 관계의 파괴, 문화의 상대성을 충격적인 비주얼과 철학적 질문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공포의 형식을 빌려 인간 내면의 어둠과 감정의 분열을 세밀하게 조명하며, 관객의 심리 깊숙이 침투하는 불쾌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죽음과 상실, 축제 속의 파멸
주인공 대니(플로렌스 퓨)는 가족을 비극적으로 잃고 극심한 불안과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다. 남자친구 크리스티안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고 있으며, 정서적 연결이 끊긴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은 스웨덴의 외딴 마을 ‘호르가’에서 열리는 미드소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대니도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다.
호르가 마을은 겉보기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밝은 분위기 속에 의식을 준비하고, 이방인들을 친절하게 맞이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의 이면이 서서히 드러나고, 축제는 점점 더 기괴하고 잔혹한 의식으로 이어진다. 자살을 숭배하는 노인의 낙사 의식, 근친과 신비로운 번식 의례, 살아있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 등이 벌어지며 일행은 하나둘씩 사라진다.
대니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도 점차 마을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연결되며, 기존 세계에서 느끼지 못했던 위로와 소속감을 경험한다. 결국, 축제의 절정에서 대니는 제물을 선택하는 의식을 통해 크리스티안을 불 속에 보내고, 완전히 ‘호르가’의 일원이 된다. 영화는 대니가 미소 짓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나며, 광기와 해방 사이의 모호한 감정을 남긴다.
대니의 내면과 크리스티안의 이기심
〈미드소마〉는 전통적인 호러 영화의 틀을 뒤집는다. 밤이 아니라 ‘낮’에 벌어지는 공포, 피 튀기는 자극 대신 서서히 무너지는 심리, 외부 괴물 대신 내부의 감정이 공포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특히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축이다.
대니는 상실로 인해 정서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다. 반면 크리스티안은 감정에 무관심하고, 그녀를 위로하기보다는 의무적으로 곁에 머무르는 인물이다. 이러한 미세한 감정의 단절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명확해지고, 호르가 공동체와의 대비를 통해 더욱 부각된다. 대니는 처음엔 이방인이었지만, 점점 집단의 정서적 동조와 감정 표현 속에 자신을 잊고 동화된다.
대니가 마지막에 크리스티안을 불 속으로 보낼 때, 그것은 단지 복수가 아닌 ‘자신을 외면했던 세계’와의 단절이다. 그녀는 가족도, 연인도 잃었지만 그 슬픔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울어주는 장면을 통해 처음으로 치유 받는다. 그들이 행하는 공동 감정 표현은 비정상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부족한 공감의 형태로 다가온다.
공동체와 개인, 그리고 윤리의 경계
호르가 마을의 문화는 외부 세계의 시선으로 보면 잔혹하고 미친 것처럼 보인다. 자발적 낙사, 의례적 살해, 근친 번식 등은 인류 보편의 도덕 기준으로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이 문화를 단순한 악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히 ‘논리적’이며, 그들만의 신념과 질서를 따른다. 이 문화는 '공포'이자 '정체성'이며, 인간이 사회 속에서 느끼는 소속감의 극단적 표현이기도 하다.
아리 애스터는 이 지점을 통해 묻는다. 우리가 ‘정상’이라 믿는 삶은 정말 건강한가? 현대 사회에서 감정의 고립, 가족 해체, 소외된 개인이야말로 더 큰 공포는 아닌가? 호르가는 그 해답이 될 수 없지만, 최소한 대니에게는 유일한 ‘정서적 피난처’가 되어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니가 보여주는 혼란스러운 미소는 관객이 판단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미드소마〉는 단지 공포를 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관계의 해체, 심리의 혼돈, 문명의 다름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공포는 외부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감정의 부재, 타인에 대한 무관심, 진정한 연결의 단절 속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