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용서와 구원, 인간이 겪는 가장 깊은 슬픔〈밀양〉은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전도연과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로,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신앙과 용서, 구원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묘사와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로 깊은 울림을 주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특히, 영화 평론가 이동진씨가 극찬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사랑, 상실, 신앙의 굴곡
남편을 잃고 서울을 떠나 밀양으로 내려온 신애(전도연)는 그곳에서 조용한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아들과 함께 새 출발을 다짐한 그녀는 동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미용실을 열고 적응해간다. 그중에는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종찬(송강호)도 있다. 그는 신애에게 호의를 보이며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애의 아들이 유괴되고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절망의 나락에 빠진 신애는 살아갈 의미조차 잃고 무너진다. 그런 그녀가 찾은 마지막 희망은 ‘신’이었다. 교회에 다니며 믿음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려 하지만, 뜻밖에도 아들의 살해범이 감옥에서 신을 만나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신앙은 붕괴한다.
신애는 “신이 그를 용서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느냐”고 절규하며 다시 방황한다. 영화는 그녀가 끝내 평온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고립되어가는 모습을 통해 구원이란 무엇인지,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인간의 고통은 어떤 의미인지 되묻는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밀양〉은 외부의 사건보다도, 그 사건이 인간 내면에 끼치는 정서의 변화와 균열에 집중한다. 신애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슬픔을 넘어서는 절망을 경험한다. 그녀의 감정은 일직선이 아닌 곡선이며, 희망과 절망 사이를 수없이 왕복한다. 이 과정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오지만, 결국 그녀를 다시 깊은 어둠으로 밀어넣는 존재가 된다.
신애의 변화는 ‘믿음’이라는 감정의 본질에 대한 철저한 질문이다. 그녀는 교회를 다니며 신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지만, 가해자가 먼저 구원받았다는 사실 앞에서 신의 공정함에 분노한다. 그녀에게 용서란 신의 자비가 아닌, 철저히 인간적인 복수의 감정과 얽혀 있다. 이 모순이 바로 영화의 핵심이다.
반면 종찬은 현실적이고 담담하다. 그는 신애의 아픔을 이해하려 애쓰며, 그녀에게 말없이 손을 내민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녀를 도울 수 없다. 종찬은 인간적인 ‘동행자’로서 신애 곁에 있었지만, 신애는 자기 고통의 세계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이 대조는 인간관계의 한계 또한 여실히 보여준다.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밀양〉은 종교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철저히 인간에 대한 영화다. 우리는 종종 신에게 기대고 싶어 하고, 신의 존재로부터 위안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영화는 묻는다.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왜 악인은 구원받고, 피해자는 고통 속에 남겨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지 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전도연은 이 역할을 통해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처절하게 표현해냈고, 이는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그녀의 눈빛, 무너지는 몸짓, 마지막에 보여주는 흐느낌은 단순한 연기가 아닌, ‘인간 그 자체’였다.
〈밀양〉은 보면서 불편하고, 끝나고 나면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삶은 언제나 아름답거나 희망차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버티는 것, 울부짖는 것, 때로는 무너지는 것조차도 인간의 몫이며, 그 자체로 삶의 진실이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끝내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야 할까? 이 영화는 그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묻고, 지켜볼 뿐이다. 그 물음 속에서 관객은 스스로의 삶과 감정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