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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줄거리, 배우 존재감, 재난은 인간

by jwbox 2025. 5. 1.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하고 불행한 현실에 놓인 상황에 들어나는 인간의 민낯과 본능을 볼 수 있었다.〈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하되, 단순한 생존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권력, 공동체의 본질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 그리고 그 공간을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 전쟁. 영화는 그 폐허 속에서 권력과 도덕, 인간성의 균열이 얼마나 빠르게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의 열연이 극을 이끌며, 연상호 작가의 원작 웹툰 ‘유쾌한 왕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장르를 넘어선 사회적 풍자극으로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관객은 영화 속 무너진 도시에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우리는 그 안에서 누구로 살아남을 것인가?

줄거리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시작은 갑작스러운 대지진이다. 서울 전체가 붕괴된 후, 기적적으로 유일하게 온전하게 남은 공간은 황궁아파트. 이는 실제 존재하는 평범한 주거공간이지만, 재난 상황 이후로는 생존의 요새가 된다. 밖은 추위와 폭력, 배고픔과 혼란으로 가득한 폐허지만, 그곳만은 아직 전기와 물이 있고, 구조적인 안전도 보장된다. 이 아파트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영탁(이병헌)은 초반에는 아파트 주민을 보호하고자 하는 ‘선한 리더’로 등장한다.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경단을 조직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며 ‘내부자들’을 위한 질서를 구축해나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전형적인 위기 속 지도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질서’가 어떻게 빠르게 독재와 배척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 영탁의 명분은 항상 주민 보호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의 결정은 점차 잔혹하고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외부인의 유입은 철저히 금지되고, 내부에서도 반발하는 사람은 ‘공동체의 적’으로 낙인찍힌다. 경비실을 중심으로 시작된 권력은 자경단이라는 이름의 무장집단으로 바뀌고, 결국엔 영탁 자신이 ‘선출되지 않은 왕’처럼 군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아내 명화(박보영)와 함께 생존을 위해 이 아파트에 들어오게 되고, 처음에는 기존 주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충직하게 공동체에 협력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가 순응했던 질서가 얼마나 허약한 논리로 유지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줄거리보다 인물 간의 미묘한 갈등과 심리의 균열을 통해 ‘무너짐’을 보여준다. 물리적 건물은 버텼지만, 인간 관계와 공동체의 도덕은 빠르게 붕괴된다. 결국 영화는 묻는다. “공동체란 무엇이며, 권력이란 어디서 정당성을 얻는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줄거리는 단순한 생존 서사가 아니라, 생존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배우들의 존재감

이 영화의 서사를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배우들의 몰입감 있는 연기다. 이병헌은 영탁이라는 인물을 통해, 권력의 ‘변이’를 체화한다. 그는 처음에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책임감 있는 리더로 등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은 굳어지고, 눈빛은 차가워진다. 이병헌의 연기는 이 변화 과정을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미묘하게,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말투가 단호해지고, 판단이 자기 중심으로 이동하며, 결국 그는 모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결정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그의 독재는 현실 정치 속 카리스마형 지도자를 떠올리게 한다.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은 ‘평범한 남자’다. 하지만 그는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로, 내부로 들어가 순응하고, 후회하고, 깨닫고, 결국 거부하게 되는 성장 서사를 겪는다. 박서준은 이 변화의 폭을 실감나게 연기하며, 비극적 결말 속에서도 관객의 공감을 얻는다. 박보영은 명화 역을 맡아 감정의 중심축을 담당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남편 민성의 결정에 따르지만, 점차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직시하게 된다. 그녀의 연기는 외적인 과잉이 없다. 대신 조용히, 하지만 강력하게 균열을 지적하며 공동체에 질문을 던진다. 이 세 배우 외에도 조연진, 김선영, 박지후 등 탄탄한 조연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조연진이 연기한 경비원 출신 자경단원은, 소외된 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 어떤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연출 역시 배우들의 이러한 연기를 놓치지 않는다. 인물의 얼굴을 오래 비추며, 말보다 눈빛, 침묵, 숨소리를 따라간다. 긴장감은 총소리나 추격전이 아니라, 마주 앉은 사람들 사이의 정적에서 발생한다. 결국 배우들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넘어, 그 캐릭터가 대표하는 인간 군상을 고스란히 표현해냈다. 그리고 이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은 각 인물 안에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재난 이후, 진짜 재난은 인간이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단지 재난 상황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도시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민낯, 특히 권력과 배제의 논리를 정면으로 마주한 영화다. 이병헌의 영탁은 독재자의 전형을 보여주며, 동시에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권력 욕망의 그림자다. 박서준의 민성은 ‘평범함’이 어떻게 정의와 거리를 둘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보영의 명화는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윤리의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무엇보다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당신이 그 상황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안전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내쫓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우리는 정말 공동체라는 이름 앞에서 평등한가? 재난은 단지 배경이다. 진짜 재난은, 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능과, 그 본능이 조직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시스템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장르를 넘어서 철학적 성찰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묵직한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에 남는다. 무너진 건물은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무너진 공동체와 윤리는,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하고, 그 질문으로 끝맺는다.